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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 공간/일상의 끄적거림

▶◀ 지켜주지 못한 우리들의 영웅. 故 한주호 준위, 故 박지연씨


  자는 1991년 9월, 19세의 나이로 해병대에 자원 입대를 했습니다. 1968년 1월 21일, 수도 한복판에서 대한민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김신조 무장간첩단 중 2명을 직접 사살한 육군 대위 출신(아버님은 육군 병으로 입대 후, 능력을 인정받아 보병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이 되신 분입니다)이신 아버지의 육군 입대 권유를 뒤로 하고 그렇게 홀로 해병대 입소를 하게 되었지요. 해병 자원입대는 인생을 스스로 헤쳐나가기 위한 첫 번째 선택이었습니다.

해병이 되기 위한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병과 교육을 받기 위해 해군기지가 있는 진해에서 6주간 생활을 했습니다. 이때 해군들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실무 생활 중에 운좋게 통신차량 교육자로 뽑혀 12주간 진해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포항 사단에서 근무한 해병으로는해군기지에서 해군 생활한 시간이 꽤 되는 해병이었던 것이지요. 

진해 해군기지에서의 6주간 교육생 시절. 맨 위 우측이 푸샵. 푸샵은 해병 676기.


진해에서 생활하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SSU 소속 사병의 얼굴이었습니다. 수경을 꼈던 자리를 제외하면 온통 까맣게 그을려 있던 그 병사의 얼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부진 체격으로 상의를 벗고 구보를 하던 UDT 요원들과 군함 위에 도열해있던 하얀 세라복을 입고 있던 수병들의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해병시절 받았던 훈련 중에 소규모 상륙작전과 대규모 상륙작전 훈련이 있습니다. 소규모 상륙작전은 고무보트나 상륙장갑차를 타고 바다로 나가 해안으로 상륙하는 훈련입니다. 이때 처음으로 수륙양용 장갑차 LVT를 타보게 됩니다. 철로 만들어진 육중한 장갑차인데 바다 위를 다닌다는 게 너무 신기했었지요. 가라앉으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바다를 휘젓고 다니며 해안에 상륙을 하더군요.

대규모 상륙작전은 LST 상륙전함(탱크, 장갑차, 병력 등을 싣고 다니다 해안에 상륙시키는 군함으로 기준배수량 약 2600톤급)을 타고 며칠간 바다를 항해하며 생활하다 해안으로 상륙하는 훈련입니다. 그 당시 승선했던 전함이 고준봉함으로 기억이 됩니다. 바다소년이었던 필자는 LVT나 LST를 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해병들 중에는 멀미나 구토 증세를 보이는 병사들도 꽤 있었습니다. 

LST와 LVT


상륙작전을 위해 연병장에 도열해 있던 유격대대 해병들을 보면서 눌러쓴 철모사이를 스쳐지나갔던 생각들은 꽃다운 청춘을 희생하며 국가의 부름을 받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는 안스러움, 부모형제를 떠나 특수환 환경에 놓여 있는 이들의 두려움,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훈련을 마쳤으면 하는 바램...그리고 영화에서 보는 가상의 영웅들이 아닌

"이곳에 진짜 영웅들이 이곳에 모여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유격대대 보병 통신병으로 30개월의 해병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제대를 했습니다. 30개월 중 해안방어시절과 교육시절을 뺀다면 거의 대부분 각종 훈련으로 점철된 군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해군과 함께 했던 생활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그것이 일상생활이든 군생활이든 어려운 시련과 상황에 맞부닥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해병이었던 나를 생각하고, 그 시절을 견뎌냈던 나를 생각합니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의미는 나에게 있어서 죽을 때까지 어려운 시련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버팀목 같은 것입니다. 천안호 침몰 사고는 필자가 직접 겪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시련과 슬픔으로 다가오는 내 아픔과도 같은 상황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슬프고, 가슴이 미어져 옵니다.

침몰 소식을 접하자마자 스쳐지났던 생각은 바로 19세의 젊은 나이에 해병으로 자원해 완전무장을 하고 상륙작전을 위해 군함에 오르기 전의 필자와 대대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차디찬 바닷속 침몰한 군함의 격실 속에 갇혀 있을 한 가족의 소중한 아들이고, 우리의 형제인 수병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새벽까지 잠못이루며 시시각각 전하는 상황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추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무엇하나 명쾌하게 풀어지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72시간이라는 데드라인을 넘겼을 때도 바다속에 있는 수병들이 살아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투를 벌이며 구조작업을 벌이던 UDT 요원 한명이 결국 순직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할 정부와 군이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입니다.

해군 특수전(UDT) 소속 잠수사 고(故) 한주호(53) 준위. 이 영웅의 얼굴을 기억하시길 바라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작금의 시대에 우리가 우러러봐야 할 영웅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엔 언제나 영웅이 숨쉬고 살아있습니다.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언제든지 달려오는 소방관, 경찰관, 구급대원 그리고 이 땅을 수호하는 군인들이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지켜주어야 할 국가가 무엇이 알려지기 두려운 것인지 구조와 구조원을 위한 지원보다는 은폐에 더 신경을 쓰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럴 수는 없다는 분노가 일어납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든 언제나처럼 죽음을 무릎쓰고 사지로 들어가야 하는 것은 힘 없는 우리의 아들들입니다. 벙커에서 회의를 열었던 국가 수뇌부(대다수가 군 면제. 당연히 했어야 할 일들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현재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들과 그의 아들들은 아닐 것입니다.

태부족한 감압장비, 드라이 슈트가 아닌 80년대 웻 슈트 장비를 입혀놓고, 악 조건 속의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바다속으로 밀어 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의 아들들은 차디찬 바닷속의 침몰된 천안함에 갇혀 있습니다. 살아 있을 거란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으나 야속한 시간은 자꾸만 흐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눈물만 더 깊어 질 뿐입니다.


지도자가, 국가가 그와 그들을 사지 속으로 밀어 넣은 것입니다. 조국과 이데올로기라는 명분하에. 그러나 그들은 진정으로 책임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아들들이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은 무엇때문인지, 왜 죽어야만 하는지 필자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주호 준위는 말합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그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내 아들들을 구하기 위해 들어가는 것 뿐이라고....

차디찬 바다속에 갇혀 있는 아들들은 말합니다.

당연히 우리가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고...

그와 그들은 영웅입니다.  

영웅은 또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고, 시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만이 영웅적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산업의 역군들도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하지만 역시 국가도, 회사도 그를 지켜주지는 않았습니다.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산재조차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삼성반도체에 입사한 후 연구직으로 일하다 3년만에 백혈병으로 숨진 박지연씨. 벌써 9번째 죽음입니다. 어떻게 한 회사에서 직원 9명이 죽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작업 환경과의 인과관계가 있을 텐데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도 책임을 지려는 모습,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출처=프레시안


현재까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 림프종 등 조혈계 암 발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9명입니다. 박지연 씨, 김경미, 황유미 씨, 이숙영 씨, 황민웅 씨, 이민호 씨,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성 노동자 2명과 수원사업장 디스플레이 개발팀 이상해 씨입니다. 그래도 소속된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내가 하는 것이라고.....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음성 혹은 영상통화는 물론이거니와 갖가지 과학적 편리함의 수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해 블로그를 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한 신문에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약 90%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제대로 된 장비 없이 사지 속으로 몰아넣은 국가를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해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필자 역시 대한민국호가 위기에 빠진다면 기꺼이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설 것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과 자기가 속한 회사를 사랑하듯이, 대한민국과 회사가 우리를 사랑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책임을 져주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랄 뿐입니다. 국민이 진실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던가요? 당신부터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랄 뿐입니다.

만우절인 오늘! 거짓말 같은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해봅니다. 다시 한번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편히쉬시길...

한주호 준위 추모블로그
한주호 준위 추모서명
국가 긴급회의 멤버들의 면면
박지연씨 추모서명
박지연씨 추모글

여기서 있었던 모든 일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조국을 증오하진 말게나.

증오라구요? 전 조국을 위해 몸바쳤습니다.

자네가 원하는 건 뭔가?

제가 원하는 것은 저들이 원하는 겁니다.
이곳에 와서 자신의 용기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은 그들이 원하는 것.
우리가 조국을 사랑하는 만큼 조국이 우리를 사랑해 주는 것.
그게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Rambo 2 - 영화의 마지막 대사 中에서